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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09 · 스포트라이트

다시 켜지는 고향의 불빛

차영훈 감독의 〈웰컴투 삼달리〉가 머문 제주 동쪽 해안 네 곳

2026-07-05 읽는 데 6분 촬영지 4곳
다시 켜지는 고향의 불빛
삼달리는 지도에 없지만, 그 마을을 이루는 바다와 오름은 제주 동쪽에 그대로 있다.

비행기가 지나는 낮은 오름, 도두봉

제주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나면 대부분의 여행은 서둘러 어딘가로 출발한다. 〈웰컴투 삼달리〉는 그 조급함을 잠시 붙잡아, 공항에서 차로 십 분 거리의 낮은 오름 위에 세워둔다. 도두봉이다. 어린 삼달과 용필이 나란히 앉아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세던 자리, 서울로 떠나는 꿈이 처음 부풀던 자리다.

정상은 걸어서 십오 분이면 닿는다. 흙길을 따라 오르면 한쪽으로는 제주 시내가, 다른 쪽으로는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다. 드라마가 이 장면을 첫머리에 둔 이유는 분명하다. 떠남과 돌아옴이 같은 하늘 아래 겹쳐 있다는 것을, 말보다 풍경이 먼저 알려주기 때문이다.

떠나는 마음과 돌아오는 마음이 같은 하늘 아래 겹친다. 도두봉은 그 두 마음이 처음 만나는 자리다.

빨간 등대와 바람의 해변, 김녕

도두봉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면 구좌읍 김녕에 이른다. 삼달리 마을의 정서를 가장 많이 빌려온 바다다. 성세기해변의 물빛은 얕은 곳에서 에메랄드로, 깊은 곳에서 짙은 청록으로 바뀌고, 그 위로 빨간 등대와 하얀 풍력 발전기가 나란히 선다.

드라마 속 여러 장면이 이 해안의 색을 배경으로 지나간다. 인물들이 다투고 화해하고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김녕의 물결이 뒤에서 흐른다. 바람이 센 날이 많아 파도 소리와 풍력기 도는 소리가 함께 들리는데, 그 소리가 마을의 배경음처럼 자연스럽다.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봄과 가을의 김녕은 한적하다. 등대까지 이어진 방파제를 천천히 걸으면 카메라가 왜 이 자리에 오래 머물렀는지 알게 된다.

마을을 지켜온 나무 그늘, 평대리 팽나무

김녕에서 다시 십오 분을 가면 평대리다. 마을 한가운데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가 넓게 그늘을 드리운다. 제주의 마을에는 이렇게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가 흔한데, 그 아래는 예부터 사람들이 모여 쉬고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였다.

〈웰컴투 삼달리〉가 그리는 공동체의 온기는 이런 나무 그늘에서 나온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삼달을 마을이 다시 품는 이야기, 그 품이 구체적인 장소를 가진다면 아마 이런 팽나무 아래일 것이다. 나무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마을을 지킨다.

가까이에는 비자림이 있다. 오백 년을 넘긴 비자나무 수천 그루가 이룬 평지 숲으로, 붉은 흙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나무가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팽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한 마음이 숲 전체로 넓어지는 코스다.

편의점 불빛이 켜지던 포구, 오조리

제주 동쪽 끝, 성산 가까이에 오조포구가 있다. 올레 2코스가 지나는 작고 조용한 포구다. 제작진은 이곳의 낡은 창고를 고쳐 드라마 속 마을 가게로 만들었다. 저녁이면 그 앞에 삼달과 친구들이 모여 앉던, 불빛이 따뜻하던 자리다.

포구의 물은 잔잔하다. 성산일출봉이 멀지 않아 물 위로 그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시간이면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관광지의 소란에서 한 발 물러난 이 조용함이야말로, 드라마가 삼달리에 부여하고 싶었던 속도일 것이다.

요란하지 않게 곁을 내어주는 것. 오조포구의 조용함이 삼달리라는 마을의 온도다.

삼달리라는 마음의 지도

삼달리는 지도에 없다. 대신 도두봉의 하늘과 김녕의 물빛, 평대리의 나무 그늘과 오조리의 포구가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다. 드라마는 제주 동쪽의 실제 장소들을 이어 붙여, 어디에도 없지만 누구나 그리워할 법한 고향을 지어냈다.

그래서 이 여행은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지도를 따라 걷는 일이 된다. 화면에서 본 바다가 눈앞에 있고, 인물들이 앉았던 자리에 바람이 지난다.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실제로 걸어서 다시 만나는 셈이다.

여행자를 위한 동선

서쪽 도두봉에서 시작하기를 권한다. 공항에서 가깝고, 정상에서 제주의 첫인상을 넉넉히 담을 수 있다. 다음은 해안도로를 따라 김녕으로. 등대와 바다를 지나 평대리 팽나무와 비자림에서 숨을 고른 뒤, 마지막으로 제주 동쪽 끝 오조포구와 성산에 닿으면 하루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렌터카가 있다면 하루에도 돌 수 있지만, 각 장소에 오래 머물고 싶다면 1박 2일이 좋다. 봄과 가을이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서두르지 않는 것, 그것이 이 드라마와 이 해안을 함께 즐기는 방법이다.


촬영지

01

도두봉 제주시 도두일동

어린 시절 삼달이가 용필이와 나란히 앉아 하늘 위를 떠가는 비행기를 보며 상경의 꿈을 그리던 곳. 제주공항 근처의 나지막한 오름으로 정상에서 제주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웰컴투 삼달리 →
02

김녕해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빨간 등대와 풍력 발전기가 어우러진 에메랄드빛 해변. 드라마 속 삼달리 마을의 정서를 대표하는 해안 풍경으로 여러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

웰컴투 삼달리 →
03

평대리 팽나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쉬어가던 평대리의 오래된 팽나무. 제주 마을 공동체의 정겨운 정서를 상징하는 장소로 드라마에 등장한다.

웰컴투 삼달리 →
04

오조포구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삼달이와 친구들이 자주 모이던 편의점 세트가 있던 곳. 제주 올레길 2코스에 위치한 창고를 개조해 촬영했으며 잔잔한 포구 풍경이 인상적이다.

웰컴투 삼달리 →

가볼 만한 곳

전망 · 도두봉

도두동 무지개 해안도로

도두봉 바로 아래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도로 경계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빨강, 노랑, 파랑으로 칠해 무지개처럼 늘어세운 것이 이름의 유래다. 알록달록한 색과 파란 바다가 겹쳐 사진 명소로 사랑받는다. 도두봉 정상에 오르기 전이나 내려온 뒤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다.

상시 개방, 입장료 없음. 별도 주차장이 넉넉지 않으니 도두봉 주차 후 걸어서 이동하는 편이 편하다. 맑은 날 오후 빛이 색을 가장 선명하게 살린다.

자연 · 김녕해변

만장굴

김녕에서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만나는 용암동굴. 오래전 화산이 흘려보낸 용암이 지나간 자리가 그대로 거대한 통로로 남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 하나로, 공개 구간 끝에는 높이 솟은 용암기둥이 서 있다. 한여름에도 서늘해 바깥 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유료 관람. 정기 점검일에는 휴관하므로 방문 전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다. 동굴 안은 바닥이 젖어 미끄러우니 편한 신발이 필요하고, 여름에도 얇은 겉옷을 챙기면 좋다.

문화 · 김녕해변

김녕미로공원

만장굴 가까이에 자리한 상록수 미로 공원. 제주에 오래 머문 지리학자가 설계한 나무 미로로, 굽이굽이 길을 헤매다 종을 울리며 출구를 찾는 재미가 있다. 공원을 지키는 고양이들이 곳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사랑받는다.

유료 입장. 만장굴과 가까워 함께 묶어 반나절 코스로 돌기 좋다. 미로를 다 통과하는 데 보통 20~30분 정도 걸린다.

자연 · 평대리 팽나무

비자림

평대리에 자리한 비자나무 숲. 수백 년을 산 비자나무 수천 그루가 모여 평지 위로 넓은 숲을 이룬다. 붉은 화산송이를 깐 산책로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향이 걸음을 저절로 느리게 만든다. 팽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한 여정을 숲으로 넓혀줄 자리다.

유료 입장, 오전부터 저녁까지 운영하나 계절에 따라 마감 시간이 다르니 사전 확인을 권한다. 큰 오르막이 없어 유아차나 휠체어로도 일부 구간을 돌 수 있다. 비 온 다음 날 숲 향이 가장 짙다.

전망 · 오조포구

성산일출봉

오조포구에서 지척인 제주 동쪽 끝의 화산체. 오천 년쯤 전 얕은 바다에서 분출한 화산이 굳어 사발 모양의 분화구를 이룬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올라 있다. 이름 그대로 해가 떠오르는 순간이 절정이며,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트인 바다와 성산 마을이 한눈에 담긴다.

유료 입장. 정상까지 계단으로 20~30분가량 오른다. 일출을 보려면 개방 시간과 그날의 일출 시각을 미리 맞춰 두어야 하고, 강풍이나 악천후 시에는 탐방이 통제되니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방문 가이드

도두봉 (제주시): 제주공항에서 차로 약 10분. 공항버스나 시내버스로도 닿는다. 정상까지 완만한 흙길로 15분이면 오른다. 입장료 없음, 상시 개방. 비행기가 자주 지나는 낮 시간과 노을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김녕성세기해변 (구좌읍): 도두봉에서 동쪽으로 차로 약 40분,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여름에는 해수욕, 봄가을에는 한적한 산책이 좋다. 무료 개방. 근처 김녕항과 풍력단지를 함께 둘러보면 드라마 속 해안 정서가 살아난다.

평대리 팽나무·비자림 (구좌읍): 김녕에서 차로 약 15분. 팽나무 노거수는 마을 안쪽에 있어 조용히 둘러보는 예의가 필요하다. 인근 비자림은 소정의 입장료가 있으며 평지 숲길이라 걷기 편하다. 방문 시간은 사전 확인을 권한다.

오조포구·성산 (성산읍): 평대리에서 차로 약 30분, 제주 동쪽 끝. 오조포구는 올레 2코스에 놓인 조용한 포구로 무료 개방. 성산일출봉은 이른 아침 일출이 절정이며 입장료가 있다(기상 악화 시 통제되니 사전 확인).

추천 동선: 서쪽 도두봉에서 시작해 김녕, 평대리, 오조·성산으로 이어지는 해안 순서가 자연스럽다. 렌터카로 하루, 여유 있게 보려면 1박 2일을 권한다. 봄과 가을이 걷기에 가장 좋다.